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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도예배

[추석 추도예배 말씀 - 감사가 있는 추석이 되자] 시편 50:23

by 알짜선생 2020.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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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은 민족적 전통으로 3대 절기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초막절이었습니다. 이 절기는 소출을 수장한 후에 7일 동안 지킨 절기입니다. 우리는 추석을 초막절에 비교하여 고유한 의미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4계절을 만드시고 알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만드시고 4계절을 주시어 섭리하시면서 그 안에서 살도록 하여 주신 것입니다.

 

둘째로, 때를 따라 주시는 은혜를 감사하여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의식주를 허락하셨던 것처럼 우리나라에도 때를 따라 풍요로운 결실을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는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며 영적인 결실도 할 수 있도록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뜻을 생각하며 청지기로서 충성할 뿐만 아니라 많은 영적 결실을 얻을 수 있길 바랍니다.

 

 

감사가 있는 추석

 

(시편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추석은 우리나라 2대 명절 중 하나입니다. 추석은 땀 흘려 일한 사람들이 그 열매에 감사하는 명절입니다. 그래서 추석을 말하기를 "수확하고, 감사하고, 사랑하고." 그렇습니다. 추석은 수확을 많이 하는 겁니다. 또 수확을 한 후에 감사하는 겁니다. 또 감사한 후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추석이 수확이 없다면 쓸쓸하죠. 그런데 수확은 있는데, 감사가 없다면 또 마음이 메마르죠. 사회가 메마르죠. 또 우리가 감사는 하는데, 사랑이 없다면 이것도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말로 진정한 추석은 수확하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있는 것에 감사하기보다는 없는 것에 더 불평을 합니다.

떨어진 과일 아깝죠. 그러나 아직 나무에 붙어있는 과일을 보고 감사 해야죠.

애써 농사지은 것이 태풍에 쓰러졌습니다. 참 아깝죠. 그러나 세울 수 있는 것에 대하여 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8절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유가 많아서, 가진 것이 많아서 감사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인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그 다음에 감사는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5023절에 보니까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랬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랬습니다. 또 감사는 하나님의 복 받는 약속입니다.

{그 감사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감사를 잘 하라, 감사하라, 그리하면 하나님이 구원을 보이리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하나님의 명령, 감사는 하나님 제일 기뻐하시는 것, 감사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통로, 이렇게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시편 1031절로 5절입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찌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를 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로 감사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개인으로 봐도, 가정으로 봐도, 사회로 봐도, 직장으로 봐도, 나라로 본다 하더라도,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 감사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두가 하나님 은혜로 살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누구에게 감사할 것인가?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가족·친척·이웃에게 감사하자

 

가족과 친척과 이웃에게 감사하자. 예전에 이산가족 상봉을 보면서 가족의 귀중함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 우리는 보았습니다. 가족, 친척, 이웃은 새의 날개와 같은 존재다.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새의 날개는 때로는 부담스럽고 거추장스러울 수 있습니다. 새가 날아가지 않을 때는, 모이를 쪼아 먹을 때는 새의 날개가 부담스러워요. 아주 거추장스러워요.

그러나 날아가야 할 때, 짐승이 와서 잡아먹으려고 할 때, 도망가려고 할 때는 날개가 없이는 안 된다, 그 말입니다. 날개가 있기 때문에 훨훨 날아갑니다. 공중을 나릅니다. 창공을 나릅니다. 다른 짐승이 아무리 좇아 와도 잡히지 않습니다. 지붕으로 날고, 산으로 날고, 나무 위로 날고, 다 나를 수 있습니다. 그 날개가 어떤 때는 거추장스럽지만, 그러나 필요한 때는 날개 때문에 훨훨 날라 간다 그 말인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가족도, 이웃도, 친척도 좋은 때가 있는가 하면, 해를 끼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모든 이들에게 감사해야 됩니다. 가족에게 감사하고, 친척에게 감사하고, 이웃에게 감사하고.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이들을 통해서 돕기도 하시며, 연단시키기도 하신다는 것입니다. 가족이, 친척이, 이웃이, 나를 도와줄 때가 있고, 때로는 그 가족이나 친척이나 이웃을 통해서 내가 연단 받기도 한다, 그 말입니다. 그러므로 모두가 합력 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8:28).

 

인간적으로 보면 구약에 나오는 요셉은 그 형들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도저히 그럴 수가 없습니다. 어찌 그 동생을 형 10명이 달려들어서 때렸습니다. 물 없는 우물에 빠지게 했습니다. 장사꾼들에게 팔아먹었습니다. 이건 보통 어려운 문제가 아닙니다. 세상에 형들이 그럴 수가 있어요? 그러나 지나고 보니까, 그것으로 인해서, 그런 시험과 연단을 통해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불과 나이 30세에 당시 세계 최고 강한 나라, 애굽 나라의 국무총리가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자기 고향 땅, 가나안 땅이 가뭄이 들고 7년 동안 흉년이 들어서 먹을 수 없을 때, 굶어 죽게 되었을 때, 자기 아버지를 살렸습니다. 자기 형제들을 살렸습니다.

 

가족, 친척, 이웃을 향해서 어리석고 죽이는 말이 아니라, 감사의 말을 하자, 그 말입니다. 시기하고 질투하는 말이 아니라, 원망 불평하는 말이 아니라, 감사하는 말을 하자. 서로서로 감사하자. 서로서로 감사하자. 그러므로 추석명절에 잃어버렸던 가족, 친척, 이웃끼리 감사 많이 하는 이런 명절이 되십시다. 성경이 말을 합니다. 에베소서 54절입니다.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그랬습니다.

 

 

둘째, 부모와 조상에게 감사하자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부모와 조상에게 감사하자고 말하면, '부모가 먼저 잘하고, 조상이 훌륭해야 고마워할 것 아닙니까? 부모가 나에게 해 준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조상이 나에게 해 준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어찌 내가 감사해야 된다는 말입니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것은 큰 잘못을 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하고 싶을 때 하고, 하고 싶지 않을 때 안 하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감사는 수지 안 맞으면 불평하고, 수지맞으면 감사하고, 그게 아닌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8). 또 그 뿐이 아닙니다. 내가 효를 행하지 아니하고, 역사의식이 부족한 것이 내 탓이기보다는 부모 잘못 만나고, 조상 잘못 만나서 그런 것처럼 생각한다면, 이것은 더더구나 잘못된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내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희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발전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절대로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현상유지하고 살기도 어려운 거예요. 현상유지도 안 하고, 퇴보하고 살 사람은 그렇게 사세요. 괜찮아요.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살수가 없어요. 오늘보다 내일을 위해 삽니다. 지금은 없을지라도 내일은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넘어졌을지라도 내일은 일어나야 합니다. 지금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아도 내일은 존경받고 살아가야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가 내게 해 준 것이 무엇이 있느냐', '조상이 나에게 남겨준 것이 무엇이 있느냐', 그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에게 "범사에 감사하라" 그랬으니까, 정말로 부모에게 감사하고, 조상 어른들에게 감사하는 삶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 그 뿐이 아닙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부모도 감사를 받지 못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그것이 뭡니까? 자녀들에게 교육을 바로 시켜주지 못한 책임. 효를 가르쳐주지 못한 책임. 어른 공경을 가르쳐주지 못한 책임. 성경적 효를 가르쳐주지 못한 책임이 있습니다. 또 그뿐이 아닙니다. 조상들의 훌륭한 유업과 업적을 자기 자손들에게 전수해주지 못하고, 알려주지 못한것. 이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 다 떠나서 자녀들은 부모에게 감사해야 됩니다. 부모님이 살아 계신 것, 그것 만 으로도 감사한 것 아닙니까? 부모님이 건강하신 것, 그것만 봐도 감사한 것 아닙니까? 나의 효를 받으실 수 있는 것만으로도 자녀는 마땅히 감사해야 될 것 아닙니까? 돌아가시고 후회하지 말고,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부모님이 건강하실 때, 부모님께 효를 해드릴 기회가 있을 때, 감사해야 합니다.

 

특별히 부모는 나를 피로 낳아주셨습니다. 눈물로 길러 주셨습니다. 땀 흘려 교육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잘 들어야 됩니다. 그런 부모에게 감사하지 않는 사람이 누구에게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죠? 자기를 피로 낳아주시고, 눈물로 길러 주시고, 땀 흘려 교육을 시켜준 그 부모님에게 감사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부모에게 감사할 수 없는 사람은 누구에게 감사하더라도 그것은 다 가짜입니다. 유익이 오면 감사, 피해가 오면 불평, 원망, 시기. 그것만이 아니라, 폭행. 그것만이 아니라, 살인. 부모에게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도 감사할 수 없습니다. 부모에게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께도 감사할 수 없습니다.

 

감사는 행복의 원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행복하기 원하십니까? 감사하십시오. 감사는 행복의 원천이고요, 평화는 감사의 나무에서 피는 아름다운 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에 행복이 있고, 감사의 나무에 평화가 있다. 그러므로 감사 없이는 행복도 없고, 감사 없이는 평화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로 행복을 원하고, 평화를 원한다면, 감사 하십시오.

 

 

셋째, 국가에 감사하자

 

국가가 있고, 내가 있습니다. 나라가 있고, 내가 있습니다. 나의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가 있고, 내가 있는 것입니다.

나라가 있고, 내 기업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가족, 친척, 이웃 그리고 부모에 대해 감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 조국에 대한 감사가 없어요. 나라에 대한 감사가 없어요. 나라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 정말로 감사하면서, 감격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적다 그 말인 것입니다.

 

돈이 좀 있다는 사람들은 어떻게든지 해외로 나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불신자들은 나라를 비판할지라도, 성도들은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사랑하고,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나라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는 그런 신자가 되어야 참다운 신자요, 참다운 국민 아니겠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로서 이 나라를 통치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통치하고 계십니다. 우리들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태어나고 보니까, 대한민국 사람이 되어서 대한민국 땅에 태어났습니다. 한국 사람에 의해서 한국 땅에 태어났습니다. 누가 그렇게 했습니까?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이 여러분이나 나를 이 땅에, 이 세상에, 이 우주에 태어나게 하실 때, 대한민국 사람을 통하여 대한민국 땅에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들은 하나님께 더 많이 감사해야 돼요. 왜요? 전쟁이 아닌 평화의 때에 태어났으니까. 여러분의 아버지나 어머니처럼, 할머니나 할아버지처럼, 그렇게 가난한 보릿고개 같은 어려울 때, 굶주릴 때, 태어나지 아니하고, 이 만큼이라도 먹고, 입고, 마실 때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북한과 같은 공산주의에 태어나지 아니하고, 독재주의에 태어나지 아니하고, 마음대로 신앙생활 할 수 있는 신앙의 자유 민주주의 나라에 태어난 것, 전도 받을 수 있으며, 전도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이런 나라에서 태어나고 이런 나라에서 산다는 것, 얼마나 감사해요.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 살고 있는 것,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 땅에 전쟁이 없는 나라를 만들자, 평화의 나라를 만들자, 전쟁 없이 통일이 되는 나라를 만들자'하고 노력하고 애쓰는 지도자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우리는 격려해 주어야 돼요. 위해서 기도해 주어야 돼요. 그리고 감사하는 삶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넷째, 자연에 감사하자

 

자연에 감사하라는 것은 자연을 신격화해서 숭배하라, 그런 말은 전혀 아닌 것입니다. 자연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삶의 터전으로,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육체의 생명을 유지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존귀를 돌리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자연은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삶의 터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연에 감사하라는 것은 자연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연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자연을 훼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을 우리는 육성시키는 겁니다. 그 안에서 얻어지는 모든 것들에 감사한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시인들은 뜨거운 태양과 휘몰아치는 태풍을 견디어 가면서 생산된 자연의 소산물과 아름다움을 너무 값싸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작은 과일 하나, 쌀 한 톨, 김 한 장도 하나님께서 자연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농부나 어부들의 땀과 눈물과 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들을 다 소중하게 생각해야 됩니다. 사소한 풀 하나라도 그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귀중한 생명입니다. 심각한 환경오염에 직면해 있는 이 때에, 생명에 대한 귀중함을 가지고 자연과 그 소산물을 대하는 것이 현대인에게 필요한 감사의 자세인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해를 보고도 마음속으로 감사해야 돼요. 달을 보고도 감사하고, 들을 보고도 감사하고, 마실 수 있는 공기가 깨끗한 것도 감사하고, 마실 수 있는 물이 있는 것도 감사. , 땅이 있는 것도 감사하고, 곡식이 자란 것도 감사. 이 자연을 보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은 절대로 악하지 않습니다. 자연에 감사하는 사람은 절대로 사람을 살인하지 않습니다.

자연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들은 사람을 절대로 폭행하지 않습니다. 자연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사람끼리 시기하고, 질투하고, 원망하고, 불평하지 않습니다. 자연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은 선한 사람, 착한 사람입니다.

 

다섯째,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하자

 

감사의 결론은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비롯해서 가족, 친척, 이웃, 조상, 국가, 자연이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가 다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셨습니다. 창세기 1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니라} 말씀했습니다. 로마서 1136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으리로다 아멘}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기의 지위, 자기의 환경, 자기의 명예, 자기의 성공, 자기의 재산만이 감사의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감사는 다 일시적이고 순간적이고 조건적인 감사인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환경이 바뀌면 감사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8). "항상 감사하라" 말씀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맞았습니다. 감옥에 갇혔습니다. 죽을 뻔 한 위기를 몇 번 넘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감사가 넘쳤습니다. 감옥에 가도 감사, 매를 맞아도 감사, 핍박을 받아도 감사, 그저 사도 바울은 감사, 감사, 감사, 감사하는 그런 신앙이었습니다. 바울이 옥중에서도 찬송을 부르고, 성도들에게 감사하라고 명령하고, 감사를 가르쳐 줄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냐? 그의 감사의 조건은 환경이 아닙니다. 환경이 좋아서 감사한 것이 아니라, 환경을 만드시고, 환경을 지배하시는 그리스도 예수가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사도 바울은 범사에 감사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의 조건이 뭐냐?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예수님 때문에 구원받고,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 아들 되었고, 예수님 때문에 천국 가고, 예수님 때문에 행복하고,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범사에 형통하며 복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로마서 725절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예수로 인해 감사하고, 하나님으로 인해 찬양하면, 어떤 고난과 역경 속에 있더라도 하박국 선지자와 사도 바울과 같이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하박국서 317절로 18절 말씀이십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 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불신자는 하나님 때문에 감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으로 인해 범사에 감사함으로 주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맛보게 된다, 그 말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십니다. 시편 5023절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불치의 질병이 치료받을 수 있습니다. 가난과 저주가 축복을 받아 부요할 수 있습니다. 없는 자가 있는 자가 됩니다. 미워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 됩니다. 절망에 처한 사람이 소망의 사람이 됩니다. 이런 놀라운 축복과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있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 론

 

우리의 신앙 회복, 인간성 회복, 삶의 회복은 잃어버린 감사를 회복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잃어버린 감사가 회복되면, 신앙이 회복되고, 인간성이 회복되고, 삶이 회복된다, 그 말입니다.

이는 힘으로 안 됩니다. 능으로 안 됩니다. 오직 여호와의 신, 성령으로만 가능한 것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변화된 삶을 통해서 부모님, 가족, 친척, 이웃, 더 나아가서 민족을 예수께로 인도하여구원받게 하는 데 앞장서는 우리 모두가 되십시다. 그래서 더 즐겁고 더 기쁘고, 더 감사하고 더 감격해서 나도 좋고, 너도 좋고, 우리도 좋고, 하나님도 좋으신 추석이 되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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