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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도예배

[생명의 신비 - 마가복음 4:26-29] 추도예배 말씀!!

by 알짜선생 2021.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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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4:26-29

(막 4:26)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막 4:27)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막 4: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막 4:29)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말씀 : 생명의 신비

부모를 따라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해온 성도들은 한번쯤 이런 고민을 해 보았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신앙이 그저 부모로부터 물려온 것은 아닐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요 1:13)이라고 하셨는데 나는 어떻게 된 것일까? 이렇다하게 내세울 신앙적 체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부모를 따라 지금까지 평범하게 신앙생활을 했는데 내가 구원의 확신이 있는 것일까?’ 평소 이런 고민을 해보신 분들에게는 오늘 말씀이 큰 도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가복음 4장에는 모두 네 가지의 비유가 있습니다. 무엇 무엇인지 찾아보십시오. 첫째는 씨뿌리는 비유입니다. 둘째는 등불과 등경의 비유, 셋째는 밤낮 자라는 씨의 비유, 넷째는 겨자씨 비유입니다. 이들 중에 씨뿌리는 비유나, 밤낮 자라는 씨의 비유나, 겨자씨의 비유는 천국을 비유한 것인데 서로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오늘 봉독해 드린 밤낮 자라는 씨의 비유는 다른 어느 성경에도 찾아볼 수 없는 마가복음만의 독특한 기록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비유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 강조점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씨뿌리는 비유에서는 씨가 뿌려지는 마음 밭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같은 씨지만 어떤 밭에 뿌려지느냐에 따라 말라죽기도 하고 열매 맺기도 합니다. 겨자씨 비유는 뿌려진 씨앗과 그 결과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작은 겨자씨지만 나중에는 모든 새가 깃들일 만큼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열두 제자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교회는 그야말로 겨자씨만큼 작습니다. 사람들의 눈에 거의 띄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온 세계 사람들이 그 그늘 아래 찾아 들어오고 있단 말입니다. 그렇지만 밤낮 자라는 씨의 비유는 씨앗의 성장과정 즉 천국의 확장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아무리 앉아서 들여다 보아도 호박넝쿨이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 보면 쑥쑥 자라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고 교회가 성장해 나가는 모습도 마치 이와 같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는 예수님의 이 간단한 비유를 통해 가깝게는 우리 자신들의 신앙을 살펴봅시다. 그리고 더 나가 우리교회의 성장을 위해 우리가 해야할 일들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씨앗에는 그 자체에 보이지 않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콩이나 옥수수, 아니면 수박씨나 호박씨를 쪼개어 살펴보십시오. 그 안에 생명이 보이는가? 참 신기한 것은 그저 작은 돌멩이와 같이 생긴 그 딱딱한 씨에서 어떻게 싹이 나고 어떻게 자라는지 신기할 뿐입니다. 더구나 그 여리고 여린 새싹이 단단한 껍질과 굳은 땅을 뚫고 나오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이해 되지 않는다고 해서 씨를 뿌리지 않는 농부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의 이해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씨는 농부가 뿌리고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니까요. 그래서 씨를 뿌린 후에는 가만히 싹이 날 때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때가 되면 싹이 나고 어느새 자라서 열매를 맺힌단 말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물론 처음에 예수를 믿으면서부터 열심을 내고 신앙이 급성장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지만 이건 특별한 경우입니다. 대부분 처음에 교회 나온 사람을 보면 이 사람이 예수를 잘 믿을 사람인지 오늘 한 번만 왔다 갈 사람인지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신앙이 성장하는 모습이 눈이 띄지 않기 때문에 실망을 하기도 하고 ‘이런 새신자 말고 예수 잘 믿는 집사님이 이사오지는 않나?’하고 생각을 해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신앙이 자란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이나 모습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느 날 보면 갑자기 컸어요. ‘꽤 신앙이 성숙했구나’하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 믿음이 별 것 아닌 것처럼 생각되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변에 있는 신자들 가운데 하루아침에 거목이 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시간이 흐르다보니 어느새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고 장로가 된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어요. 밭에 씨앗을 뿌려놓았다고 해서 그냥 저절로 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비가 오지 않으면 물을 줘야 하고 잡초가 나면 뽑아주어야 하고 벌레가 생기면 잡아주어야 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가꾸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하는 분들이 목사요 구역장이요 교사입니다.

고린도전서 3:5-8을 보십시오. 싹이 나고 자라게 하는 과정에서 두 사역자들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씨뿌리는 사람과 물주는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싹을 틔우거나 자라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 3:7). 그러니까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 각자에게 맡겨진 일에 충실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의 성장은 신비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던 가운데 싹이 나서 자란단 말입니다. 생명체에는 세 가지의 신비가 있습니다. 생명 발생의 신비, 생명의 자람의 신비, 그리고 생명 사망의 신비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를 믿고 복음으로 생명이 싹텄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자라는 것이 중요한데 자라기 위해서는 잘 가꾸고 보살펴주어야 합니다. 예배시간마다 빠지지 말고 교회에 열심히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생명에는 과정이 있습니다.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하나의 작은 생명에는 반드시 과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너무 서둘지 말고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2. 우리가 씨앗의 생명력을 믿는다면 열심히 뿌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첫째, 여기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농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정성껏 씨를 뿌리는 일입니다. 씨를 때에 맞추어 잘 뿌리기 위해 밭을 갈아 흙을 부드럽게 손질하고 거름을 주는 고된 작업을 먼저 합니다. 그리고 좋은 씨앗을 골라 그 씨를 뿌립니다. 그러나 농부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는데 그것을 씨를 자라게 하는 일입니다. 씨는 스스로 자란다는 것을 농부는 잘 압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농부가 씨를 뿌리듯이 정성껏 전도하는 것이고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정성을 쏟아야하고 땀과 눈물을 흘리면서 힘들게 수고를 해야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 일이 매우 쉬울 수도 있지만 때로는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일이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고 해서 소흘히 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농부가 힘들다고 해서 씨를 뿌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거둘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만약 우리 주님이 그런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는 악하고 게으른 종일 것입니다(마 25:26).

반면에 또한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전도 그 다음의 일입니다. 즉 우리가 사람을 만나 예수를 믿으라는 말은 할 수 있으나 그 사람을 예수 믿게 할 수도 구원을 얻게 할 수도 없습니다. 이것을 바울이 분명히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 3:5-7). 전도하거나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전하고 가르치긴 해도 그 사람이 믿음을 갖도록 하는 것과 믿음이 자라게 하는데는 손을 쓸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대방이 믿지 않는다 해도 실망하지 않고 열심히 전하면서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둘째, 우리가 기대해도 좋은 것과 기대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물론 농부가 씨를 뿌린 다음에 풍년의 꿈을 안고 큰 기대에 부풀어 있는 것은 바람직 하지만 너무 성급하게 추수를 하고 싶어하는 조급함을 피해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먼저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성급한 결과입니다.

제가 맨 처음 신학교 등록을 하고 개학을 하기 전에 일입니다. 신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몇 사람은 전도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도지를 가지고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날은 정말 성령 충만하고 신나는 날이었습니다. 며칠 동안 전도를 했는데 그동안 복음을 받아들이고 다음 주일에 꼭 교회로 오겠다는 사람이 20여명이나 되었습니다. 주일 예배시간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아침 10시부터 문 앞에 나가서 새신자들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 중에 몇 명이 왔을까요? 10명? 아니면 5명? 아닙니다. 놀랍게도 한 명도 오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맥이 빠지고 실망이 되었는지 꼭 사기를 당한 기분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섭섭하기도 했고 하나님께 원망도 했습니다. 다음날 집집마다 다시 찾아가 따지고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변명이 많고 핑계가 많은지 놀랐습니다. 그 때 깨달은 전도의 원리가 있습니다. 한 번 따라해 봅시다. “효과적인 전도란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한번 전하고 즉시 응답이 나타나기를 기대한다면 성급한 사람입니다. 내가 복음을 전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금방 믿고 새사람이 될 것 같이 기대를 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복음을 듣고 그 자리에서 믿고 회개하고 돌아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몇몇 사람이 이렇게 돌아온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그러리라고 기대를 해서는 안 됩니다. 생명이라는 것은 점진적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생명의 원리입니다.

28절을 보십시오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이 말씀 속에는 생명의 원칙이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필요한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하고 그 과정을 거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생명의 법칙입니다. 성급한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다른 한편으로 기대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풍성한 추수를 할 수 있다는 꿈입니다. 예수님은 이 꿈을 기대하면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요한복음 4:35을 보십시오.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지금 당장 예수님의 눈에 세상 사람들이 모두다 믿고 돌아오고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미래에 나타날 일을 가리키는 꿈이었습니다. 우리도 똑 같은 비젼을 가지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내가 전하는 복음이 절대로 땅에 떨어지고 헛되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라게 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시요 그 하나님의 말씀 안에는 사람을 구원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받은 사람은 그 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생명의 씨앗이 자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들은 그들은 말씀이 언젠가는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는 분의 손아래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기대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알밖에 안 되는 복음의 씨앗이 얼마나 강한지 아십니까? 우리 나라에 120년전에, 복음이 들어 왔습니다. 몇몇 사람의 가슴에 뿌려진 이 복음의 씨가 120년이 지난 지금은 엄청난 풍작을 가지고 왔습니다. 밤중에 일어나 빨갛게 수놓은 교회당의 십자가 네온들을 보십시오. 세상에 이런 나라가 몇이나 있습니까? 이 생명력을 여러분은 믿습니까? 믿으신다면 우리는 큰 꿈을 가져야 합니다. 당장에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실망하며 탄식하지 말고 여유를 가집시다. 꿈과 용기를 가집시다. 우리가 복음의 씨를 뿌리기만 하면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말씀의 씨앗 안에는 놀라운 생명력이 있는 이상 절대로 헛되지 않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꿈을 가슴에 품고 열심을 다해서 뿌리는 일에 충성을 다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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